공화주의

『공화주의』모리치오 비롤리- 3장 공화주의적 자유의 가치

joojeong 2020. 4. 14. 15:25

이들은(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 법에 의해 개인적 선택에 부과되는 제한이나 간섭은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화주의적 자유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로서 자동차의 브레이크처럼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었다.


법의 지배가 엄중하게 지켜지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자의적인 의사를 타인들에게 강요할 수 없게 된다. 반면, 법 대신 사람이 지배하게 되는 경우에는 타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고, 이들을 억압하거나 이들이 하는 일을 방해함으로써 이들로부터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특정인들이 존재하게 된다.

 


법이 통치자와 일반시민들에게 부과하는 제한들은 어떤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가하는 강제를 막아낼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유효한 방어수단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공평한 법 아래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와 자기 통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은 후자를 전자를 보장하는 조건 중 하나로 여겼다. 로마의 정치사상가들은 왕이 흠정한 법 아래에서 사는 인민은 예속된 자들이지 자유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즉 이들은 자유의 상태가 아니라 예속의 상태에서 살고 있는데, 주인 아래에 있는 노예와 그 상태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법이 개인들의 선택에 가하는 속박은 특정 개인이 타인들에게 자의적으로 가하는 속박과는 다른 것이다. 앞의 경우 우리가 하는 것은 법에 대한 복종이며, 뒤의 경우 우리가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예종이다.


그들은(공화주의 정치사상가들) 법의 지배가 개인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이들의 의사를 표현해서가 아니라 ㅡ즉 이들의 동의를 표현해서가 아니라 ㅡ 법이 일반적이고 추상적 명령이고, 그리하여 개인들을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고전적 공화주의는 언제나 예속에 저항했는데, 왜냐하면 예속이 한쪽에는 비굴함을 키우고 다른 한쪽에는 오만함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비굴과 오만은 시민적 삶이라는 이상에 똑같이 해롭다. 이 점이 특별히 중요한 것은 자의적 권력과 주종적 지배 관행이 지속되는 것이 방종이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의 부재와 함께 시민적 문화를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제약 하에 있는 것과 예속 하에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속으로부터 어떤 시민들을 해방시키는 입법조치들은 다른 시민들에게 있어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생략) 아내들을 예속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남편들의 자의적 권력을 제한하면서 가정 내의 평등을 보장하는 법을 가져야 한다. 근로자들을 예속으로부터 지켜내려면 근로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존엄을 지켜주고, 또한 사용자의 자의적 권력을 통제하는 법이 필요하다. 궁핍한 사람들을 자선행위로부터 해방시키려면 이들에게 충분한 공적부조를 보장할 수 있도록 세금을 올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서 보듯이, 어떤 시민들에게서 예속상태를 제거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소극적 자유에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다. 즉 자기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행동했던 사람들에게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다. 예속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적 제약을 늘릴 수밖에 없다. (생략)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이 공화주의자들은 간섭이나 속박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에 전혀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화주의자들이 이러한 자유를 예속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보다 낮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예속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와 간섭 내지 속박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우리는 전자를 후자 위에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생략) 즉 어느 누구도 굴종하지 않도록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주종적 지배를 허락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예나 지금이나 공화주의적 유토피아의 핵심이 되는 이러한 이상에 더욱 부합하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자들은 개인들 모두가 하나의 공공선을 위해 봉사한다는 그런 유기적 공동체의 관념을 조장하고자 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법률들이 비르투로 충만한 시민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동의되는 그런 공화국들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데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고전적 공화주의 선배들의 지혜를 따라 정치적 자유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을 진리의 확인이나 증명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적 논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으로 분명히 편이 갈리는 이해와 생각들 사이의 쟁투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