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

『공화주의』모리치오 비롤리-역자서문, 저자서문

joojeong 2020. 4. 13. 16:03

 

공화주의는 언제 들어도 참 애매한 개념이다. 윤리와 사상에 대차게 들어온 개념이기도 하다. 공화주의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샀다. 첫 번째는 공화주의(모리치오 비롤리)고 두 번째는 왜 다시 자유인가(필립 페팃)이다. 이것 저것 한다고 미루다가 이제야 공화주의 첫 페이지를 폈다.


★ 역자 서문

국민 대다수는 '실제의 공동체' 대신 월드컵과 올림픽 등에 열광하면서 '상상속의 공동체' 속에서 사는 것으로 우정의 결핍,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달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공화주의는) '함께 하는 것',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동일한 법과 규칙 아래서 권리와 의무를 함께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즉, 레스 푸블리카를 세우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의 지배'라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자유, 평등, 공공선 그리고 법치를 그 핵심 가치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평등은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평등이다. 불균등한 부의 소유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정치적 권리의 불균등한 소유 및 행사가 나타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시민의식(시민적 덕성)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자유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개개인이 갖춰야 할 '마음의 습관'으로서, 진정한 자유란 사적 공간에서가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만 보장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이탈리아어판 저자 서문

 

공화국이란 법과 공공선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이 만들어낸 정치공동체를 의미한다.


키케로는 공화국을 "인민의 일들"을 뜻한다고 말하면서 덧붙이기를, "인민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진정한 자유는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들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 것에 있으며, 법치의 엄격한 준수 이외에 일상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루소)는 "자유로운 인민은 복종은 하지만 예종하지는 않으며,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게 예종하도록 강제될 수는 없는데, 이것은 법의 힘 때문"이라 말했다.


 

공화주의의 정수는 일반시민들의 대승적 사랑, 즉 타인들에 가해지는 억압, 폭력, 불의 그리고 차별을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느끼는 분노이다. 공화주의 정치는 대승적 사랑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것은 남들이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덜 고통 받기를 바란다.

 

★영어판 독자들을 위한 소개의 글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그들이 말하는 '자기 통치'의 원리, 즉 자치의 원리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로마법 원리에서 도출해냈다. 모두 그러한 의사결정에 똑같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공공선(또는 공익)의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 공공선이라는 것은 남에게 예속되는 것도 원치 않고 또한 남들을 예속시켜 사적으로 지배하려는(또는 주인처럼 지배하려는) 야심도 없는 그런 시민들에 이로운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그는 이렇게 예속을 피하려는 욕구가 바로 자유를 향한 욕구이며, 이러한 공공선을 실현하는 데는 공화정이 군주정보다 더욱 효과적인 정치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들(초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혼합정을 선호하는 근거로서 혼합정이 각 사회 그룹들에게 공화국 내의 공적, 정치적 삶에 있어 각기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며, 또한 최고 통치권을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보장한다는 점을 들었다.


마키아벨리 같은 사상가들은 다수의 시민들로 구성된 회의체가 새로운 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단지 소수로 구성된 회의체가 작성하여 상정한 법에 대해 가부를 결정하는 것으로만 그 권한이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내가 이 연구에서 수정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통념이 있는데, 그것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를 대체하려는 사상 쳬계라는 통념이다. 이는 사실과 다른데,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많은 정치적 아이디어들을 고전적 공화주의로부터 물려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상속의 대표적 예로 '최고 통치권력은 항상 헌법적, 법률적 규범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기본적 원리를 들 수 있다. 또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개인주의-더 정확히 정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개인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즉 개인의 생명, 자유, 그리고 소유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생각-도 고전적 공화주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공동체 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이러한 원리를 방어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일이다.


근대 초기 이탈리아의 공화주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주의만의 창작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연적인(양도불가한 또는 생래적인)인간의 권리라는 독특한 개념이다. 이 자연권 이론은 자유주의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명백한 이론적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권리도 오직 법과 관습(관행)에 의해서만 많은 적든 간에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권리는 역사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법과 관습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때 그것은 권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 아니라 도덕적 요청 정도로 불려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후세의 사상가들과 달리 자연권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그는 오직 자유만이 개인들이 누릴 수 있는 선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러한 자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좋은 정치제도와 군사제도를 갖춰야 하고, 개인들이 충분히 시민적 비르투를 체화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운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힘세고도 공격적인 국가들이 너무 가까이 있지 않아야 한다.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에게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은 '예속되지 않는 것'ㅡ즉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ㅡ을 의미했다. 이러한 식으로 정치적 자유를 해석한 것은 '자유인'의 상태를 ㅡ타인의 자의에 종속된 노예와 달리ㅡ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로 규정한 로마법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이 법적, 정치적 권리를 가질 때 자유롭게 되는 것처럼 한 국민이나 국가는 자신의 법 아래에서 살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것이다.


또한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공정한 법에 따라 개인적 선택에 제한을 두는 것은 자유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했다. 그들은 일반 시민들 뿐만 아니라 통치자들의 행동에도 동일하게 가해지는 법적 제한은 개인들을 억압하려는 시도에 대한 유일한 방패막이라고 믿었다. 마키아벨리는 …법집행자들도 두려워하는 시민, 또는 법을 제 맘대로 위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시민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게 되는 경우, 국가 전체는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운 국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고 기술했다. 국가는 오직 그 법률과 헌정질서가 귀족들의 오만과 민중의 방종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때만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루소에 따르면, 자유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제한을 가하는 법에만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자유가 상실된 상태란 특권이 존재하는 상태ㅡ즉 특정 개인이 다른 사람 모두에게 가해진 제한을 면제받을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진 상태ㅡ를 뜻한다.


공화주의는 타인에 예속되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자유주의는 우리가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간섭은 받지 않지만 여전히 예속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좋은 주인을 만나 제 맘대로 생활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주인을 어딘가에 두고 있는 노예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예속되지 않고 독립되어 있지만 많은 간섭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정당한 법률에 복종해야 하고 수많은 시민적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자유시민의 경우가 그러하다.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가들의 주장은 예컨대 예속이 간섭보다 자유에 대한 훨씬 고통스러운 침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주권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일종의 적극적 자유이다. 하지만 공화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들이 예속에서 벗어나 있을 때, 그리고 타인이나 타집단의 자의에 좌우되지 않을 때 누리는 일종의 소극적 자유이다. 자유에 대한 이처럼 상이한 해석에서 정치적 참여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 나타나는데, 민주주의 사상가들이 정치적 참여를 민주적 제도들에 의해 강화되어야 할 목적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그것(정치적 참여)을 자유를 수고하고 덕성과 자격을 갖춘 시민을 지도자로서 선출하고 사적 주종관계를 혐오하는 정치문화를 진작시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생각한다.


 

여성을 남성의 사적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남성이 누리는 선택의 자유를 법률을 통해 간섭해야 한다. 노동자를 고용주의 자의적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고용주가 누리는 선택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의 지위를 즐기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권리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공화국은 공정한 세금을 부과해야 하며, 필요한 사회적 자원들을 모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예들을 통해 예속은 반대하지만 제반 의무들은 받아들이는 공화주의의 정치적 자유 개념이 공화국의 주 목적에 잘 부합하고 있음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오직 간섭으로부터, 즉 개인이 가지는 선택의 자유에 간섭하는 여러 움직임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반해 공화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모든 예속의 조건들로부터 개인들을 해방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자유주의자가 걱정하는 것은 개인적 행동의 자유가 실제로 억압되고 제한받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화주의자는 이러한 것도 우려하긴 하지만 예속적 삶이 가져오는 의기소침을 더욱 우려한다.


내가 말하는 나라사랑은 내가 속한 공화국의 제도와 생활방식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적 애국자들에게 있어서 나라사랑은 계속해서 불어넣어야 하며, 또한 정치적 수단에 의해 끊임없이 강화되어야 하는 인공적 열정인 데 반해 민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오염, 문화적 동화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생래적 감정이다. 공화주의자들의 조국은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제도이며 이에 반해 민족주의자들의 조국은 자연의 창조물이다. 공화국은 전설적인 입법가의 탁월한 능력과 지혜, 그리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동의에서 기원한다. 이에 반해 민족은 신에 의해 세상에 나타난다.


 

공화주의적 애국의 옹호자들이 시민들로 하여금 공동체 전체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도록 권유하면서 사실상 개인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17세기까지 압도적인 지위를 누렸던 '말하는 기술'에 입각한 '정치사상하기'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믿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이건 과거건 미래건, 시민들이 특정 정치적 입장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뚝 떨어진 채 이성적, 합리적 관점에서 판단하여 찬반을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