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자유인가?

『왜 다시 자유인가?』필립 페팃-한국 독자를 위하여,옮긴이의 말, 머릿말

joojeong 2020. 4. 17. 13:56

한국 독자를 위하여

수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공화주의 전통에 따르면 이러한 절차적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은 그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부패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공선을 창출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1.

비록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이 폭력과 사회공학으로 전락하더라도 정치철학의 존재이유는 '교조적 재생산'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실현'에 달려있다. p.11

 

감정적 운동이나 순간적 공분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기존의 제도가 어떤 정치사회적 해악을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 사회는 해악의폭로와 대중적 공분을 용인해야 한다. p.12

 

정치가 시민이 형성하는 공적 압력에 좌우된다는 것은 감당해야 할 숙제이지 척결해야 할 병폐는 아니다.p.13

 

정치철학적 이상이 개인이나 집단에게 민주적 심의로 갈등을 해소할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철학의 빈곤을 한탄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정치철학적 해법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은 것이다.p.13

 

2.

필립 페팃은 비지배 자유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철학의 빈곤을 타개할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그는 비지배 자유가 다양한 요구를 민주적 심의로 유도하는 동시에 민주적 절차에 규범적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보듯, 자유를 비지배, 즉 '타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자유'로 정의하면, 자유방임주의자들처럼 자유와 평등을 서로 갈등하는 것으로 상정해 전자의 우위를 당연시할 이유도 없고,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처럼 자유와 평등을 독립된 원칙으로 보고 자유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동체주의자들에 대한 지적에서 보듯, 인간의 본성을 사회적, 이타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공공선에 대한 기여와 정치에 대한 참여를 앞세워 개인을 예속으로 이끄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비지배 자유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적 심의로 공공선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사회적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p.13-14

 

페팃은 비지배 자유의 두 가지 측면을 전면에 내세운다. 첫째 '조정적 이상'이다. 이 때 '조정'이라는 말은 비지배가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다른 여러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비지배는 공리주의의 '공리'와 달리 '제1원칙' '절대적'기준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어떤 원칙을 폐기하지 않는다. 대신 비지배는 모든 원칙이 논의되고 심의될 수 있는 과정이 가능하도록 조력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행위자 상호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즉 비대칭적 힘을 지니고 있는 쌍방이 공정한 논의를 하도록 유도하고, 논의의 결과가 상호간의 관계를 일방의 지배 또는 일방의 종속이 되지 않게 규제한다.

 

둘째, '성찰적 균형'이다. 여기에서 비지배는 현실 속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는 없지만 현실을 평가하거나 개선하는 이상으로 제시된다. (생략) 다만 페팃에게 비지배는 정치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립된 정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역할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자유'와 관련되어 제시된 다른 어떤 이상보다 비지배는 성찰적 균형으로 포괄적이며 풍부한 정치사회적 정의의 기초를 제공해줄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개개인의 직관적 판단을 수정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즉 성찰적 균형으로 바라보면 최소한 자유와 관련해서 '해방'이든 '불간섭'이든 비지배를 대체할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특정한 공화주의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로마 공화정을 비롯해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대부분 공화주의 정체는 비지배의 이상에서 일정 정도 동떨어져 있고, 동일한 이유에서 비지배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p.15-16

 

3.

비지배와 관련된 공화주의 내부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생략) 내부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논쟁은 '자의적 지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지배'를 막을 방도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페팃의 행위자 중심적 견해에 대한 여러 지적이 중요하다. 비록 그는 구조적 지배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그가 정의하는 '자의적 지배'는 지나칠 정도로 행위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실제로 '간섭할 수 있는 능력' '의도' '추정된 이익'같은 자의적 지배의 조건은 개별 행위자의 무의식적 선택이나 습관화된 순종을 유발하는 정치사회적 구조와 사회적 규범의 힘에 둔감한 편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용인된 구조적 지배는 행위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취약한 집단이나 개인은 비지배의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배제와 소외를 극복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와 부모의 관계 그리고 장애인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처럼 상대방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 '비지배'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의존'은 '지배와 피지배'로 이해하고 어떤 '의존'은 인간의 근원적인 취약성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양육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부양의 책임을 부과할 제3자적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러한 판단을 수행할 심의기구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인과 집단에 대한 사회경제적 책임을 시민이 어느 정도까지 함께 나눠야 하는지 등 이 중 어느 것도 비지배 자유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손쉽게 결정할 수 없다. p.17-18

 

4.

페팃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논의는 종종 민중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자의 일반적 우려를 넘어선다. 그는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무분별한 불만의 표출이 소요와 충돌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생략) 그가 말하는 '자유'는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다. 따라서 그에게는 불만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할 이유도, 기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의적 지배에 대한 저항을 단계적으로 탈정치화해야 할 이유도 없다. 혁명적 변화와 대중적 선동에는 비판적이었지만, '소요'의 책임을 시민의 무지로 돌리거나 그 결과를 쉽게 예단하지 않았다. 대신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와 '명령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구분해 전자를 강화하고 후자를 억제하는 정치지도자의 기지와 공화주의 제도의 운영을 강조했다.

 

5.

"자유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자유를 실현함으로써 여러 다른 정치사회적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는 비지배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지배가 자유와 평등의 가교가 되고 비지배 자유가 여러 상이한 정치사회적 요구를 매개하는 연결 고리가 된다면, 그가 책에 거는 기대도 실현되리라 생각된다.

 

 

머리말: 비지배 자유, 미래의 밑그림을 제공할 수 있는 타당한 이상

이견을 해소할 도덕적 잣대의 부족과 판단 준거

자유의 의미

'인형의 집'과 노라

인형의 집의 중심인물은 상당히 젊고 성공한 은행가인 토르발트와 그의 아내 노라다. 토르발트는 19세기의 관례에 따라 아내의 행동에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라를 너무 애지중지한 토르발트는 그의 어떤 행동도 거부하지 않았다. 적어도 은행가의 아내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랬다. 사실 그는 노라가 특별히 좋아하는 마카롱을 먹지 못하게 했으나 그것이 대단한 규제가 되지는 못했다. 노라는 자기 치마 안에 마카롱을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사사로운 행동에 관해서라면 거의 백지수표를 받은 셈이었다. 그는 19세기 유럽 여성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자유를 누렸고 많은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노라가 자유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토르발트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토르발트의 방임적 태도는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듯 노라에 대한 불간섭을 의미한다. 그는 노라의 선택에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하지 않았고, 노라가 자신의 선택을 실행하려 할 때 그를 조종하거나 속이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노라를 자유로운 행위자로 간주할 수 있을까? 많은 철학자가 주장하듯 자유가 불간섭이라면, 우리는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이렇게 판단하기가 망설여 질 것이다. 아마 당신은 노라가 도르발트에게 쥐여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일 뿐 결코 자유롭지 않다.p.26-27

 

비지배 자유의 이상

자유는 간섭뿐 아니라, 로마 공화정시대에 지배라고 불린 타인에 대한 예속의 부재를 요구한다.p.27

 

노라가 누렸던 불간섭은 이러한 의미의 자유에 미치지 못한다. 토르발트의 온정과 선의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당신을 간섭하려 할지라도 이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생략) 즉 토르발트에게 선택의 자유를 빚지고 있는 것 뿐이다. p.28

 

노라가 진정으로 자유로우려면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가 필요하다. 즉 다른 사람의 의지, 특히 토르발트의 의지에 예속되지 않는 게 필요하다. (생략) 그가 선택하는 데 그 어떤 자의적 간섭, 즉 그의 요청이나 허락 없이 행사되는 간섭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p.28

 

비지배 자유에서 얻는 현대 사회에 관한 비판적 관점

노라가 처한 곤경은 낯설지 않다. 당신이 교사, 직장 상사, 은행 지점장, 보험회사 직원, 가게 점원, 경찰, 이민국 직원, 교도소장처럼 다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대접받거나 대접받지 못하는 처지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삶을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허락 없이 침입하는 존재에 대항할 물리적, 법적 방편이 없고, 다른 사람의 권력에 복속되어 손해나 해악을 입지 않으려면 그저 그 사람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생각해보자. 바로 이것이 노라가 감내해야 했던 부자유다. p.29

 

사람들이 비지배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공화정이 되어야 한다.p.29

 

정의가 자유이며, 자유가 정의다.

자유의 세 가지 범주: 사회적 정의

무엇이 한 사회를 정의롭게 하는지 살펴볼 때, 우리는 특정 사안을 사회적 정의, 민주적 정의, 그리고 국제적 정의라는 세 가지 범주 안에서 고려할 수 있다. p.30

 

먼저 사회적 정의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즉 한 사회 내의 시민 사이의 관계에서 유발된 사안 말이다. (생략)

이런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접근방식을 살펴보면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가 특정 사회에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 이미 우리가 어떤 직관적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직관은 모호하고 상호모순적이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의에 관해서라면 들쑥날쑥하고 제멋대로인 개인주의적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 급진적인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이와 달리 비지배 자유라는 이상은 더욱 명확하게 초점을 맞춘 다른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사회제도적 장치가 구성원의 비지배 자유를 어느 선까지 증진시키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사회적 정의의 요구 조건들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p.32

 

그렇기에 자유라는 이상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궁핍과 종속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부당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한 병폐가 부당한 이유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타인의 자비에 의존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보다 힘이 더 센 사람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삶을 영위할 능력이란 그들이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선택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만일 당신이 가난하다면, 즉 당신에게 사회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거나 함께 어울릴 사람들을 고를 때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하기 쉽다. 따라서 한 사회의 법적, 경제적 질서가 사람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사회적 정의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즉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상태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비지배 자유가 결코 유일무이한 선은 아니다. 그러나 비지배 자유는 선의 관문이다. 즉 비지배 자유의 실현이 다른 많은 선의 실현을 약속하는 것이다. 정부가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에서 타인에게 종속되는 일이 없게끔 비지배 자유를 보장하려면 사회적, 의료적, 법적인 차원에서의 안전과 가정 및 직장 그리고 더욱 일반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법적, 경제적 질서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p.32-33

 

자유의 세 가지 범주: 민주적 정의

이는(민주적 정의) 시민과 시민의 삶을 규제하는 정부가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바라본 정의다. p.33

 

정부는 법적 제재, 세금 부과 등으로 불가피하게 시민의 삶에 간섭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유라는 이상은 이러한 간섭이 지배가 될 필요는 없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즉 그러한 간섭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이 정부의 간섭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면, 간섭이 자유에 본질적으로 해가 될 이유가 없다. 시민이 통제하는 정부의 간섭은 어떤 외부적인 권력이나 의지도 반영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비지배 자유라는 이상은 정부의 간섭이 힘 있는 자들의 무제한적 재량이 아니라 시민이 확립한 규정에 따라 행사되는 정치체제를 요구한다. 이런 체제를 갖출 때 비로소 엄밀하고도 요구조건이 까다로운 민주주의가 이름값을 할 수 있다.

 

자유의 세 가지 범주: 국제적 정의

같은 선상에서 국제적 정의도 다룰 수 있다. 즉 지구상의 여러 사람 사이의 관계도 다룰 수 있는 것이다.p.34

 

비지배자유와 관련된 주제는 각 사회의 독립과 주권, 즉 각 사회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 질서가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알려준다. 국제 정의를 위협하는 요소에는 빈곤과 억압으로 제기된 문제와 이로써 야기된 국제 원조와 보호의 문제가 포함된다. p.35

 

비지배 자유가 제시하는 분명하고도 매력적인 행로

즉 정의란 결국 사람들의 사회적 상호관계 속에서, 자국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이의 관계 속에서, 자유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얻어질 수 있다.p.36

 

더욱이 비지배 자유는 목적을 단수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견을 통합할 수도 있다. 정치사상의 거의 모든 관점에 비춰보더라도 자유라는 이상은 적합한 정치적 평가 기준이다.p.36

 

"정의는 자유이며 자유는 정의이다."p.37

 

하나의 도덕적 지침

자유와 더욱 구체적인 가치인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주권 사이에 이러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이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비지배 자유를 누리게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진정한 형태의 정의를 누리게 될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자신과 정부의 관계 속에서 비지배 자유를 누리게 하자. 그러면 비록 다루기 어려울지라도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셋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다국적 기구나 국제기구와의 관계 속에서 비지배 자유를 누리게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적절한 형태의 주권을 누릴 것이다. p.39-40

 

정의, 민주주의, 주권의 시금석

쳐다보기 실험

쳐다보기 실험은 삶의 기본적 선택, 즉 기본적 자유와 관련된다. 당신은 자원과 보호를 제공받으면서 현지의 기준에 따라 공포를 느끼거나 맹종해야 할 이유 없이 타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생략) 사회적, 의료적, 법적 안전을 누릴 때 그리고 적절한 법적 경제적 질서의 혜택을 누릴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안전을 타인의 배려나 생색에 의지하지 않는다.p.40-41

 

불운 실험

불운 실험은 정부가 국민을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해 내리는 집단적 결정이 당신에게 불리하다고 해도 이는 다만 불운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이는 통치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일 정부가 당신 집 뒷마당 가까이에 감옥을 짓기로 해도,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준한 정책결정 과정과 원칙에 바탕을 두고 행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정은 당신이나 당신 이웃에게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이 공모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감옥에 관한 적대적 결정이 비록 당신에게 불리하더라도 단지 불운이었다고 여길 것이다.p.41

 

직언실험

마지막으로 직언 실험은 국제적 토의나 외교활동에 임할 때 각 나라 대표의 활동이 액면 그대로 이해될 수 있도록 각 나라 사람들이 그만한 자원과 보호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 토의와 외교활동은 각 나라의 대표 모두가 존중받는 상황에서 전개되며 공적인 교환에 따른 기여가 된다.p.42

 

지역적 기준과 현재적 기준

그런데 이 세 가지 실험을 정식화하면서 왜 나는 지역적 기준 또는 현재적 기준이란 말을 계속 강조했을까? 정의, 민주주의, 주권을 위해 각 실험에서 어느 정도로 행동하면 판가름해줄 타당하고도 포괄적인 범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42